추억의 연희동
어린 나는 연희동에 있다. 연희동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내 기억은 연희동에서부터 시작했다. 연희동에는 좋은 기억들이 많다. 오늘은 그 몇몇 기억을 이곳에 적어보려고 한다.
아무래도 내 어릴 적의 큰 부분은 형이 담당하고 있다. 형 때문에 응급실에 간 적도 있지만 형이랑 함께해서 행복했던 기억들도 많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겨울 방학 언젠가, 나는 형이랑 함께 안산에 있는 청소년수련관으로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수영 연습을 하고 나온 뒤 우리는 항상 동네 문방구점이나 편의점에 들렀다. 문방구에 가면, 형이 항상 유희왕 카드 팩을 사줬고, 편의점에 가면, 찐빵을 사서 나눠 먹었다. 카드 팩에서 좋은 카드가 안 나와도 행복했고, 찐빵이 식어도 행복했다. 분명히 겨울이라서 추웠을 텐데 이 기억은 매우 따뜻하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모두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셔서 주로 집에는 형과 나만 있었다. 형과 나이 차이가 좀 있어서 나는 마음껏 놀아도 되는 나이였음에도 형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도 형이랑 같이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유희왕 카드게임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저학년한테 에반게리온을 보여주는 건 좀 이상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상한 (?) 장면에서는 형이 내 눈을 가렸다. 물론 나는 가끔 손가락 틈 사이로 봤다.
형이랑 유희왕을 할 때는 침대에서 했다. 침대의 이불을 반으로 접고 매트 위에서 카드를 펼쳤다. 현관의 도어락을 입력하는 소리가 나면 우리는 게 눈 감추듯 이불을 덮어서 불법 듀얼 현장을 은폐하고 나는 그 이불 위에 앉아서 책을 읽는 척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밤에 책을 읽다니, 참으로 말도 안 되지만 부모님은 넘어가 주셨다. 노력이 가상했나 보다.
얼마 뒤, 형은 기숙사로 들어가서 집에는 나 혼자가 되었다. 집에 혼자 있는 내가 걱정이 되셨는지 어느샌가 아빠가 일찍 집에 들어오셔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아빠는 가끔 보드게임들을 어디선가 가지고 오셨는데 그런 날에는 저녁을 먹고 같이 보드게임을 했다. 어떻게 된 게 아빠는 내가 이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 시기에는 눈물 젖은 베개에서 잠드는 날들이 좀 있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니 콧방귀 나오는 기억이다.
어느 순간부터 아빠도 다시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셨고 나는 주로 동네 친구들이랑 해가 질 때까지 밖에서 놀았다. 그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어서 창문 밖을 눈과 귀로 감시했다. 애들 노는 소리가 들리면 거의 100% 확률로 동네 친구들이라 바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서 놀았다. 술래잡기, 얼음땡, 비비 총, 야구, 지옥 탈출, 공 차기, 숨바꼭질.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가끔은 친구네 집에서 자고 밤새도록 닌텐도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맨날 놀았다. 뽀로로가 맨날 노는 게 픽션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행복한 날들을 보내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연희동을 떠났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연희동에 가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든다. 하지만 연희동에 가도 과연 그때의 감정이 남아있을지 잘 모르겠다. 없을 것을 알지만 굳이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추억은 추억이라서 따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추억을 확인해 보면 그 기억이 사라질까 무섭다. 때로는 내가 만들어낸 기억이 추억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