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 개똥철학
※ 주의 ※
이 글에는 실제 카레 레시피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경각심을 가지고 접근하시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나는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해서 자취를 했었다. 기숙사 입사에 실패했을 때, 가장 먼저 밥걱정이 몰려왔다.
나의 근심을 느끼셨는지, 지극히 높으시고 자비로우신 형과 형수님께서는 이 미천한 나에게 전기밥솥을 사주셨고 그 작은 가전은 내 자취방에서 여권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밥이 해결되자 반찬이 문제였다. 물론 간장계란밥은 맛있지만 매일 먹는다면 나의 정신은 온전치 못할 것이었다.
나의 식재료 조달처는 8차선을 건너 20분 정도 걸어가면 있는 작은 마트, 그리고 자취방과 같은 도로에 있는 편의점이었다. 한정된 식자재로 만들기 쉽지만 맛과 영양을 두루 챙긴 레시피는 카레가 유일했다.
그렇게 1주 1카레는 기본을 넘어 나만의 관습이 되었다.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카레를 끓였고 나의 경험을 토대로 가장 맛있었던 레시피를 공유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나의 카레 레시피, 줄여서 “카레”,를 시작하겠다. 레시피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의 카레 개똥철학이므로 내가 무조건 옳다.
우선, 카레 2.5인분을 위한 준비물과 손질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소고기 - 대충 2 주먹 깍둑썰기
- 양파 - 2개 채썰기
- 당근 - 2개 송송 썰기 또는 반달썰기
- 토마토 - 2개 한입 썰기
- 버터 - 1~2스푼
- 고체 카레 - 적당히
토마토를 제외한 소고기, 양파, 그리고 당근은 모두 한 스푼에 담아서 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썰어준다. 한 스푼에 밥을 포함한 모든 재료가 담길 때, 나는 그것을 황금 스푼이라고 부르기로 글을 쓰면서 방금 정했다.
재료에 감자가 없어서 당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까먹은 것은 아니다. 내가 있던 곳에서 구할 수 있는 감자는 골판지 맛이 나서 안 넣었을 뿐이다.
우선 냄비를 달군 다음, 소고기를 넣고 구워준다. 대충 구워도 나중에 가면 맛있어지기 때문에 완전히 익힐 필요는 없다. 소고기의 부위는 중요하지 않지만 “스튜용”이라고 파는 녀석들을 주로 사용했다. 그러나 고기는 무조건 소고기를 넣어야 한다.
고기를 다 굽고 잠시 빼둔 다음 양파를 넣고 냄비에 남은 소고기의 흔적을 훔쳐 가듯 볶아준다. 양파는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물렁물렁해진 양파가 가장 단맛을 낸다.
양파가 준비됐을 때, 앞서 준비한 당근과 토마토, 그리고 소고기를 넣어주고는 물을 붓는다. 이때 토마토에서도 물이 나오기에 물은 모든 재료가 반신욕을 할 때까지 넣어준다. 물은 적은 것이 넘치는 것보다 낫다.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스펀지로 담으면 되지 않냐 하는 사람들은 스펀지 카레를 먹는 이상한 사람들이다.
당근이 잘 익을 수 있도록 오랜 시간 끓여준다. 맛은 시간과 거래된다. 오랫동안 푹 끓여줄수록 재료들이 서로 인사하고 친해지면서 냄비에는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보통 한 시간씩 끓여줬다. 한번은 너무 급해서 30분도 채 못 끓였는데 그래도 맛있었다. 그 이유는 다음 단계에서 알 수 있다.
육수와 채수의 향이 방안 곳곳을 누비며 나를 유혹할 때, 뚜껑을 열고 비장의 무기 버터를 넣는다. 버터는 이 카레의 주인공이 아니다. 버터는 주인공에게 첫 패배를 안겨주는 악역과도 같다. 과하면 카레가 아닌 버터 찌개가 되며 건강에도 좋지 않다. 그러나 한두 스푼으로 적당히 강할 때 그는 결국엔 주인공의 조력자가 되며 카레라는 이야기를 한층 더 풍미 있게 해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카레 블록이다. 이 자는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존재다. 카레 블록은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다. 주로 S & B 사의 골든 카레를 사용했다. 이름부터 “황금”이 들어가 있고 맛이 이를 증명해 준다. 한 팩에 보통 8조각이 있으며 나는 주로 3~4조각을 사용했다.
불을 끄고 카레 블록을 넣어준다. 카레 블록에는 기본적으로 밀가루가 들어가 있고 냄비가 너무 뜨거우면 바닥에 붙어서 탄다. 이미 들어가 있는 재료들과 친해지도록 적당히 저어주고 카레 블록이 완전히 융화되었을 때 이 레시피는 완성이다.
지금부터는 카레를 먹는 방법에 대한 나의 개똥철학이다. 카레라이스를 먹을 때, 밥과 카레를 섞지 아니한다. 섞은 카레에는 모든 숟가락에서 같은 맛이 나기에 흥이 없다.
안 섞은 카레의 한 스푼 한 스푼은 인생과 같다. 어떤 스푼에는 밥이 너무 많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여운을 준 스푼이 있기에 카레가 많이 담긴 스푼은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다.
초반에 카레를 너무 많이 먹으면 후반에는 라이스만 남는다. 그렇다고 초반에 카레를 너무 아끼면 후반에는 카레가 너무 많이 남아서 짜다. 카레와 라이스의 양을 조절해가면서 만족스러운 마지막 한 스푼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성공적인 카레라이스인 것이다.
대학생 때 카레를 먹으면서 한번도 이 음악을 듣지 않은 것이 의아스럽다.